1회용

※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삶이라는 것은 때로는 나에게 힘겨운 일이 되기도 한다. 어떨 때에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한없이 즐겁기만 하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그 뜻 그대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에 있다. 하지만 어찌 인생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삶은 그저 꾸려나간 것이 아니라 살아 나간 것이다.

  과거 많은 철학자들이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사람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현재 수억의 지구 인구 전체는 똑같은 고민을 한번이라도 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논제는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 나에게 삶은 어떤가? 30이 넘어 어느덧 서른 중반을 치닷는 지금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러한 고민에 빠질 때면, 나는 가끔 퀸이 생각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각자의 이유로 가지고 산다. 나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바로 추억에 있다. 퀸은 나에게 추억과 같은 밴드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노래를 듣기 시작할 때에는 프레디 머큐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들의 전성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던 사람은 아니다. 다만 밴드 음악에 한창 심취해 있던 무렵, 퀸은 나에게 충격적인 경험과 추억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기한, 아니 더 극한으로 표현하여 이상하기 그지 없는 음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듣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이 있는 이 노래는 과연 뉘가 만들었던가. 그렇게 퀸 노래는 내 삶의,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의 이유 중 하나로 가끔 꺼내어 다시 들어보는 추억이 되었다.


STILLCUT

정말 무서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 근데 솔직히 그게 끝이었음.


2.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나는 영화를 꽤 많이 챙겨보는 편이다. 물론 평론가나 전문가 만큼은 못하겠지만 일반인 수준보다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면서 돈이 아까운 영화인지 아닌지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데,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마디로 말하면, 근래 본 돈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하지만 잘만든 영화인가 하는 질문에서는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이다.



POSTER



  영화의 단점 첫번째, 이 영화에는 악역도 선역도 없다는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생이 그렇게 끝이 났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실제 존재했던, 불과 몇 년전 (10여년이 지났지만) 만 하더라도 생존해 있던 사람을 표현하다 보니, 영화의 표현과 스토리가 단순해 질 수 밖에 없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공 외의 인물을 전부 실존 인물로 채우고 실제 있었던 사건을 나열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다큐맨터리가 된다.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날 과거 이야기에서는 누군가는 영화를 통해 이미지가 나빠져 한편으로 소송의 우려도 심해진다. 단적인 예로, 최근 개봉하였던 암수살인이라는 영화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처럼 말이다.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보니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악역과 선역의 모호한 선상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덕분에 영화는 누구하나 두드러지는 사람 없이 그냥 저냥인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 프레디 머큐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단 한명의 악역도 없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뚜렷한 악역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이다. 

  영화의 단점 두번째, 스토리의 너저분함이다. 전형적인 서부극, 돌아온 탕야 - 주인공이 천재성 혹은 성공을 이룩하다가, 무엇인가의 유혹에 넘어가 한때 타락하여 귀중한 것 (가족이나 애인)을 잊고 살다가 귀중함을 깨닫고 돌아간다는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함과 동시에, 노래도 해야겠다, 프레디 머큐리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많은 것을 이루려다 보니 스토리는 생략과 비약으로 너저분하기만 하다. 그들의 음악이 세계에서 어떻게 해서 성공하게 되었는지, 혹은 그 성공의 규모 척도를 알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첨가하였더라도 이렇게 너저분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스포일러를 곁들이자면, 미국에서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화 한 통화로 그랬다더라 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는 모습에서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3.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가치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일컬어 퀸 팬들을 위한, 헌정 영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퀸을 모르는 사람이 퀸의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조용한 영화관에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리듬을 타게하고, 이것이 전설이라 불리는 밴드, 퀸의 음악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영화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퀸의 음악으로서의 가치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퀸이라는 밴드 위치가 정말로 전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 자체가 퀸이라는 이름에 주눅이 든 꼴이었다.

  스토리가 너저분하고 허점이 너무나 많고 영화로서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영화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아 스토리가 뭐 이래 라고 한탄하면서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실은,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노래가 퀸의 노래였다는 것이다. 마치 퀸의 노래가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여야 할까. 그래서 나는 대단히 만족하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그리고 누구나들처럼, 유튜브를 켜서, LIVE AID 영상을 또 다시 틀어 보았다. 놀라왔던 것은 정말 영화에서 똑같이 재현하려고 노력했고 성공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또 한번 더 보고싶다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 장면들을 - LIVE AID를)


여담1. 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편인데, 딱 두번 눈물이 흐를 뻔 했다. 첫 번째는 프레디 머큐리가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지병을 밝히면서 연설을 할 때였고, 두번째는 LIVE AID 공연장을 들어가면서 몸을 푸는 모습을 보면서다. 근데 정말 LIVE AID 장면은 터져나오는 감탄사를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여담2. 글쓰는게 취미라고 몇개의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안쓰고하다가 또 다시 취미 살려보려고 최근에 감명 깊었던 영화 리뷰 첫글로 써봅니다. 담부터 쓰고싶은거 많이 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블로그가 취미기 때문에 광고같은거 올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광고주 분들 보시라고 쓴글이 아니라, 광고 배너 같은거 안넣으니 부담가지지 마시라고..) 그리고 오랜만에 쓰니 영화처럼 내 글도 중구난방이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삶이 그렇게 으쓱으쓱하지 않다. 감정이란 이를데 없이 가벼워서 단지 며칠 전만 해도 이제 끝난 것만 같이 느껴졌는데,

아직까지 내게 주어지는 시련 혹은 고통은 마침표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오늘, 뉴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인지, 죽지 못해 사는 것에 슬퍼해야하는지, 혹은 안타까운 마음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인지..

작년 이맘때쯤,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고 그렇게 눈물도 흘리며, 내가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내 심장도 터져버릴 것 같이 슬펐는데, 불과 몇개월 만에 웃으며 지내는 내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의 조건은 하하하 하고 웃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내 삶을 즐거이 여기는데 그렇게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뼈를 추리는 차가운 바닷물에서 삶의 끝에 다다른 아이들이 느꼈을, 고통 슬픔 그리고 오만가지 것들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들을 보아서라도 조금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삶을 만족하면서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빛나는 4월의 햇살은 이다지도 행복한 미소띄는데


즐거움으로 가득한 뱃고동 소리가 땅끝 마을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에게 웃을 날은 너무나 많았다.


어떻게 내일의 슬픔을 예견할 수 있으랴,


어제의 행복도 부질 없는 것이,


삶은 그렇게 갑자기 혹독하게 몰아치더라.


심해의 기저에서 들리우는 


혹한의 바다, 생존의 메아리.


나의 앞가림에 너무 무심했던가


삶은 혼자 걷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오늘 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련다.


내 생의 반을 때어 주어서라도


기저에서의 생환을 기적하여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해보련다.


우리 마주잡은 손으로


따스한 체온을 함께 나누고


행복한 웃음 지으며


오늘을 함께 걸어 나가자. 


그러니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