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대한민국에서 판타지를 읽는 것은 어린애 같은 감수성의 발로이다. 우리네의 어른들은 부끄러움이 너무 많다. 자신이 만화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기전에 방안에서 히히덕 거리면서 읽는 줄로만 알고, 판타지 소설은 애들이나 읽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네의 만화와 우리네의 판타지는 점점 어린이를 위한 문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타자 打者'  이영도.

  참 필자라는 말을  많이 쓰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글을 쓸데에는 '필자' 라는 말 대신에 '나'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나 스스로 '필자' 라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필자' 가 되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독자' 가 된다. 그 순간부터 필자와 독자가 존재할 뿐, 나와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필력이 약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직까지 '필자' 라는 호칭, 혹은 칭호가 마땅찮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스스로를 '타자'라 칭하는 이영도가 참 좋았다. 스스로를 향한 호칭에서 진한 겸손을 느꼈다. 실제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붓으로 글을 쓴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그의 타자라는 호칭은 솔직해서 좋았다. 







  뭐 사실은 그의 필력에 아니 타력에 매료되었다고 해야겠다. 나는 그의 글이 참 좋았다. 그는 글 하나를 써도 이해하기 쉽게 쓰는 편이다. 남들은 어렵다고 말하는 '퓨처워커'나 '폴라리스 랩소디' 같은 소설은 처음 읽으면 참 난해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모르겠고, 결말 또한 가늠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남들은 '드래곤 라자' 나 '눈물을 마시는 새' 를 좋아할 때에, 나는 아직까지 이영도 최고의 작품을 '퓨처워커'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퓨처워커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책의 재미도 반감이기 때문에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여러번 읽어보면, 이영도라는 작가의 타력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가에 대한 충격을 받는다. 나는 어렸을 적 읽었던 드래곤라자보다 커서 다시 읽어본 퓨처워커에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대뷔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타력을 과시하면서 국내에 꽤 많은 충성층을 확포한 몇안되는 판타지 작가이다. '드래곤 라자' 라는 걸출한 처녀작을 PC통신에서 연제하면서 판타지계의 거물이 되었다 이후로 '퓨처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에 이르는 장편 소설들을 연제하면서 오히려 매니악한 판타지 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장편 소설은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무척 틀리다.  초기작인 드래곤라자와 퓨처워커를 제외하면, 흔히 판타지에 등장하는 파이어볼 마법이나 텔레포트 마법, 검사와 마법사의 세계는 써먹질 않는다. 현재 나오는 판타지의 대부분 세계관을 차지하는 '톨킨' 의 세계관을 벗어나, 스스로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읽기 편했던 드래곤라자에서 이어지는 폴라리스 랩소디는 참 낮선 작품이 되었다. 해적이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이라니? 그리고 거기서는 마법사가 파이어볼이나 텔레포트 같은 주문을 쓰지도 않는다. 뭐랄까.. 나는 이것을 판타지의 신기원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의 신기원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절정을 이룬다. 판타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기념비적 작품이다. 퓨처워커나 폴라리스 랩소디처럼 어렵지도 않다. 세계관에 대한 고정관념만 격파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 처럼 재미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세련된 반전과 감동적인 내용.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이영도는 자신의 타자 인생에 또 한번 반전과 흥행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작들을 쏟아내더니, 요즘은 너무 잠잠하다. 피를 마시는 새를 집필하고는 한 3년동안 너무 조용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은 드래곤라자 10주년 기념 한정판과 신판이 등장한다는 소식. 그리고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등장한 그 타자 '이 영 도'.

  나는 물론 그가 집필한 모든 소설을 소장하고 있다. 드래곤라자 초판본부터, 피를 마시는 새. 물론 나도 드래곤라자 한정판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앞서 밝혔 듯 퓨처워커나 폴라리스 랩소디 같은 작품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구매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10주년 기념판을 발매하면서 날치기로 나온 한권짜리 장편 소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림자 자국' 이다.





  




  '그림자 자국'을 1주일 전에 사놓고는 오늘 다 읽었다. 맛있는 것은 나중에 천천히 먹는다는 생각도 아니었는데 (사실 NDS 용 역전재판 3 를 즐기고 있어서 --;;) 읽기 시작한 오늘,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번 장편소설도 무척 난해했다. 그의 타력은 3년간의 공백기간 동안에 더 난해해 진 듯 싶다. 그의 소설들이 한번 읽어서는 제 맛을 보기가 힘든 소설들이라 지속적인 복습으로 내용을 어느정도 습득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소설의 내용이 진짜 원래 그 내용이 맞는지도 조금 의문스럽다. 또 이 글을 읽으면서, 또한번 진화한 그의 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이나마 다음에 나올 장편 소설은 어떻게 될 지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나와 동향(同鄕)인데다가 농담 하나까지 나의 마음에 쏙 드는 타자 이영도. 3년이나 기다렸다. 그림자 자국이라는 한권짜리 소설로는 그 3년의 갈증을 채워주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직 그는 젊고, 나도 젊다. 그리고 우리에겐 글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빛과 눈이 있다. 걸출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글을 또 들고 나오기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