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申 이라는 응원 피켓은 사실은 종범神을 잘못 표기한 것이었다. 이 종범신이라는 말은 어떻게 와전되어 종범甲으로 읽혀지는데, 여기서 갑이다, 니가 갑이다 라는 식의 갑이라는 말이 널리 퍼진다.
갑이라는 말은 법학을 전공하면서 무조건 알아야 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나는 한문을 지독하게 못해서 읽는 것이라곤 一 二 朴 日 月 따위의 초등학교 수준 뿐이었고 덕분에 법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한문으로 뒤덮힌 법학 서적들은 도저히 읽을 수도 없는 물건이었던 것. 1학년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전공이라곤 민법총칙 하나 였지만 한문에 대한 압박은 최고였다.
어쨌거나 그런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나도 어느정도 한문을 보는 눈이 틔였다. 물론 아직까지 못읽는 글자는 엄청나게 많고 전공서적에서도 해맬때가 무척 많지만 이제는 옥편이나 사전없이도 대충 단어 뜻을 유추해낼 정도가 된다. 참으로 다행이다. 1학년때는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甲이라는 단어도 못읽을 정도였으니까
서두가 너무 두서가 없구나, 그러니까 하고자 하는 얘기는 대충 이런거다. 법학에서 甲이라는 위치는 무척 중요한 위치다. 어떠한 민법 계약 문제를 논하고자 하면 항상 나오는 예시에선 甲乙丙丁의 순서로 사람을 표기한다. 을병정도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갑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있을까? 대부분의 법학 문제는 갑에서 이루어진다. 갑이 을의 집을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을은 병에게 이중매매로 자신의 집을 팔 일도 없고, 또 형법에선 갑이 야밤에 절도를 저지르러 남의 집에 침입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제가 주거 침입 문제가 될지 않될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얘기하는 갑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매우 오묘한 기분을 느낀다. 그냥 신이라는 표기가 잘못 전해져서, 신god 대신에 사용하는 말로써 사용하는데, 이게, 이 갑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웃기거나 재미있는 표현은 아니란거다. 사실 갑이 진짜 갑이다. 갑이 神인거다. 법학에서의 갑이 없다면 갑은 갑이 아니라 을이되었겠지. 하지만 어쨌든 갑은 갑으로써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며 모든 이야기의 끝으로 간다.
예로 들면, 갑이 을에게 어쩌구 저쩌구 해서 어쩌구 저쩌구 했다. 그래서 갑이 할수있는 일은? 갑이 을을 때리고 어쩌고 해서 어쩌고 했다. 그래서 갑의 최책은?
그렇다. 법학에서도 갑은 갑이다. 우리가 쓰는 갑이라는 말이, 우스꽝스러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오묘한 맛이 있다. 그 의미는 비록 와전되고 왜곡되서 쓰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에서, 사실은 여기에 쓸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어쩌다가 쓴 갑이 진짜 神같은 존재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