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 사실 오늘 12월 16일은 자원봉사를 한지 2달이 넘은 관계로 정확하게 기억해서 쓰는 글은 아니며, 일기형식으로 씁니다.


1.9월 23일, 임권택 감독 회고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다른 해들과 달리 한국영화 회고전이 영화제가 시작하기 1주일 전 부터 열렸다. 다른 해와 달리 대한민국 영화 산업을 이끌어온 거장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무수히 많은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임권택 감독! 대한민국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 이름 석자에 웅장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단한 분의 회고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실 처음 내가 임권택 감독님 회고전에 사전 근무를 자청한 이유는, 다소 부산지리에 대해서 약한 탓도 있고 (부산은 도로가 더럽다 보니, 부산에 5년 정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차를 몰고 온 적이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그 기간에 딱히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첫 자원봉사 날이었고 긴장감도 있었고, 설렘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사전근무이므로 다른 자원봉사자들보다 자원봉사 옷을 선지급 받았다. 크게 의미있는 건 아니지만 남들보다 먼저 경험해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임은 틀림 없다. 협찬 받은 차량은 아직 입고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운용하는 차량을 (이것 또한 협찬받은 차량인 듯 했지만) 배정받게 되었다. 차량은 임권택 감독님의 차량 외에는 전부 카니발이었는데, 운전병 출신이라 상당히 다양한 차량을 몰아보았던 나에게는 크게 부담이 되진 않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꼈다.


  23일의 일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영화의 전당에서 회고전 개막식이 거행되었고 그 이후 회식이 끝이었다. 출근 후, 차량을 일괄적으로 주유하고 세차를 한 다음, 점심식사를 하고 오늘 가야 할 주요 장소에 대해서, 차량을 통해 먼저 가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김해공항에 일괄적으로 가서, 손님을 맏이 할 준비를 하였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분은, 임권택 감독님과 임권택 감독님과 친분이 깊은 가수이시며 음악감독님이신 김수철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김수철 감독님을 모시게 되었다. 김수철 감독님 외 한분 더 계셨는데 누구셨는진 기억이 잘 안난다.. 김수철 선생님은 참고로 그 유명한 치키치키차카차카초! 날아라 슈퍼보드를 만드시고 부르신 분이시다. 어쨌거나 김해공항 국내선 귀빈 출입구에서 대기하였다.



캬!! K9의 자태!!


  참고로 내가 배정받은 카니발은 꽤 풀옵션이었다. 선루프 빼곤 최고 옵션인 듯 싶었다. 근데 네비가 없는 건 함정. 물론 네비가 없어도 충분히 많이 왔다 갔다한 길이고 멀지도 않아 조금 헤매도 큰 문제 없을 거리였지만 네비를 생활화 하다가 없으니까 너무도 불안하더라. 특히 내 핸드폰은 블랙베리라서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네비를 사용할 수도 없었고.. 정말 그냥 내 몸만 믿고 갔다. 근데 영화의 전당으로 돌아오는 길이 잘 생각이 안나더라. 곧 임권택 감독님을 뵌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귀빈을 모시게 되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없어서 K9 운전하는 자원봉사자에게 같이 움직이게 된다면 선두에서 잘 따라 올 수 있도록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기다리니 귀빈실에서 임권택 감독님과 사모님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아드님 (권현상), 김수철 감독님과 지인분이 나오셨는데, K9에는 임권택 감독님과 사모님이 타시기로, 그리고 카니발엔 김수철 감독님, 지인분, 그리고 권현상씨, 이렇게 타려 했으나 권현상씨가 K9을 타겠다고 하셨다.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권현상씨가 자기는 카니발이 구려서 세단을 타겠다 따위가 아니라 김수철 감독님이 불편하실 것 같아 K9을 타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자신의 아버지 임권택 감독의 아들이라 성공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명을 쓴 것처럼 당당하고 멋진 분이었다.)

  어쨌거나 정말 오랜만에 귀빈을 모시게 되었는데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마 이등병때 이후로 이렇게 운전한건 처음이지 싶다. 아니 생각해보면 군대때보다 훨씬 조심해서 운전했다. 근데 생각보다 귀빈 분들이 운전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진 않으셨다. 나도 군대에서 운전병을 하면서, 옆에 타는 선탑자가 운전이 답답할 때나 위험할 때에나 반응을 보이지, 조금 급발진 한다고, 조금 급정거 하는 것에 구구절절 간섭을 하진 않았는데, 그것보다 더 편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원봉사자였으니까.. 군인은 아니니까..


  김해 공항에서 오던 길이 복잡하진 않았지만 공항까지 꽤 오래 걸렸다. 무조건 정속을 유지하고 급발진, 급정차 하지 않기 위해서 애쓴 결과다. 타신 두 분이 편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했으리라곤 생각했다. 도착하고 나니까 등에 땀이 너무 많이 나있었다. 호텔 옆가에 차를 대고 휴식을 취하고 편의점을 들려 간단히 식사를 했다. (햄버거 쪼가리 먹었음..) 호텔 앞에서 안성기 배우님과 강수연 배우님 등을 봤다. 이 두분은 영화제 내도록 계속 뵌걸로 기억한다.

  조금 기다린 다음, 영화의 전당에서 회고전과 관련한 행사에 모시는 운행을 하였고, 개막작과 함께 진행되는 행사라 상당히 오래 대기하여야 했다. 저녁먹고 싶은 생각이 안들고 그냥 자고 싶어서 영화의 전당 1층에 있는 조그만 공원에서 잠을 잤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회식이 있었는데 회식 장소가 해운대 쪽 모르는 횟집이라 네비가 없던 나는 그냥 쉬다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운행 종료된 시점에서 다같이 퇴근했다. 





2. 9월 24일, 임권택 회고전 2일차

  이 날은 솔직히 별로 한게 없다. 원래는 오전에 공항 의전 (호텔 -> 공항) 1번과 오후에 공항 의전 1번이 끝이었는데, 오후 일정의 권현상 배우님이 오전에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가시는 바람에 오후 스케쥴이 취소 되었다. 오전 스케쥴에서, 명필름 대표님이신 심재명 대표님을 모시고 공항으로 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대표님이 쪼금 늦게 나오시는 바람에 비행기 일정에 늦을 뻔 했다. 그래서 대표님께 양해를 구하고 동서고가도로에서 신나게 밟은 날이다. 덕분에 15분 전, 안전하게 도착. 솔직히 심재명 대표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명필름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었는데 대표님을 직접 뵙게 되다니. 그리고 그렇게 유명하신 분 치고 대단히 수수하고 구김이 없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틀동안 하면서 느낀 점은,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게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각해보면 나랑 똑같은 사람이고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내가 해주는 일이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단히 고맙게 생각해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날은 금방 일이 끝났지만 조금 자신감을 얻고 또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