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시대가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꼽으라면 우리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추억들을 끄집어 냅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추억은, 내가 기억하는 한, 영원한 역사의 기록물입니다. 과거의 향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 향수에 취해 추억의 향수병에 걸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 나온다고 해서 '많이 실망스러울 것' 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대감은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모래요정 바람돌이' 나 '독수리 5형제' 같은 작품을 제외하고 정말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던 작품들을 엄청나게 만들어냈던 감독이기에 이번만큼은 제발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사실 좀 시큰둥 합니다. 어찌 마음 속 길을 헤아려, 천리 마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만, 우리 추억에 하나 간직하던 만화를 현실에서는 이야기 하기 싫어하죠. 물론 술자리에서 심심풀이 땅콩정도로 이야기 한 적은 있을지라도, 
  사실 우리네의 어른들은 정말 쑥스러움이 많고 부끄러움도 많습니다. 솔직하지 못하다고 해야하나.. 참 옛날 이야기지만, MBC에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코너 거리인터뷰에서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슬램덩크와 여러 만화책을 거론했다가 된통 욕을 먹은 일은 참으로 유명해서 꺼내기도 민망하죠.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성공한 경우가 참으로 드문 듯 하네요. 그냥 아이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저런 거 보면 '미친거아냐?? 애도아니고' 뭐 이런 식으로 들고 나오는 통에, 우리 문화에서 은둔형 오타쿠도 생기고 어쩌고 하는거겠죠? 이야기가 많이 딴데로 갔는데, 어쨌든 저는 미술 전공하는 친구를 많이 둔 터라, 어찌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과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나 '이웃집토토로'나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작품도 봤었기 때문에 별로 생각없이 보게되었습니다만, 역시나 이건 뭐 애들천국 --;; 그리고 내용도 저는 솔직히 좀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혹시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신지? 예고편에 보여주는 액션신이 전부 끝이고 내용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류를 죽이러 온 외계인이 인류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한번 봐준다' 라는 내용이 끝이라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이 작품 '벼랑 위의 포뇨' 도 똑.같.습.니.다. 내용은 더 간단하게 줄일 수 있겠네요. '포뇨라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내용입니다.








론 애니메이션의 효과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스토리텔링은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 가능한 것이 아니지만, 보통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오는 사람의 반응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만, 조금만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어보면 참 감칠맛 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참 잘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영상미, 케릭터의 표정과 움직임, 그리고 세세하고 작은 것들의 표현력은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이 정말 2D로 직접 표현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먹고 이야기하고 움직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눈이 편안해지는 영화라서, 참 기분 좋게 보았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듯 싶습니다. 아름답게 수놓아진 파스텔 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바다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도 들고, 포뇨가 튀어나올 듯한, 아니, 오늘이라도 바다에 당장 뛰어가면 포뇨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선물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최대의 강점은, 우리네 어린시절 감수성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는 잠재적인 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정말 거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세계를 창조해내니까요. 그 창조의 힘이, 비록 우리에게는 매우 유치하고 재미없는 일일 것입니다만, 아직 그 나이에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존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른들은 참으로 어른스럽지 못합니다. 주인공 소스케의 엄마는 운전을 장난감차 운전하듯이 무척이나 위험하게 운전하고 -물론 생긴것도 장난감 처럼 생겼습니다.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겨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모두들 배를 한척씩 끌고나와 절망하기 보다는 도시락을 싸고 어디 소풍이나 가는 사람들처럼 모두 즐거운 표정입니다. 참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습니다. 낙천적인 사람들이라서? 아니면 모두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해병대의 신념으로 가득차서? 아닙니다. 제가 느끼는 이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들 아이들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진심으로 모든 세상이 물로 뒤덮힌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보이스카웃을 즐기러 나온 것 처럼, 다들 카누를 즐기는 것 처럼 그렇게 재미있게들 웃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우리네 어른들에게 넌지시 묻습니다. 왜 그렇게 찡그리기만 하고 사냐고 말이죠. 이 애니메이션은 절망을 극복하라든지, 우리에겐 밝은 희망이 있다든지 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현재가 즐겁지 않냐고. 




  참 곰곰히 씹어보면 단맛이 많이나는 콩같다고 해야할까요? 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어찌보면 속빈 쭉정이같고, 또 어찌보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콩깍지같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보여주기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넘쳐흘러버린 내용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또한 정해진 영화시간에 모든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중등도비만 애니메이션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나서 참 돈아깝다, 내용이 이렇게 부실하냐고 불평할 수 밖에 없죠. 다 설명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엄청나게 부풀려놓곤 그냥 그들은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결말을 맺으면, 당연히 그런줄로만 알았던 옛날의 어린이들이 아니었 듯, 이 애니메이션을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의미는 소설 '어린왕자' 에서 찾아보면 몇개 나오겠네요. 

 양을 그려달라는 것에 구멍이 뚫린 상자를 원했던 어린왕자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사막여우가 되어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소스케' 에서 '포뇨' 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속에 길들여진 나의 이름으로, 서로를 소중히 하기를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기를 이야기합니다.



벼랑 위의 포뇨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2007 / 일본)
출연 나라 유리에, 도이 히로키, 야마구치 토모코, 나라오카 도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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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벼랑위의 포뇨(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464)